독자님, 안녕하세요. 사실 사연을 9월 1일에 보내주셨는데 그만 여행을 가는 시기가 다음 달이라 착각했어요. 늦은 답장이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죄송한 마음으로 과거의 독자님, 혹은 새로운 여행을 앞둔 분에게 편지를 띄워봅니다.
일단 혼자 여행을 가는 용기에 격려와 칭찬을 보냅니다! 꼭 열 살이 더 많지만, 저는 아직도 혼자 해외여행을 간 적이 없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듯해요(남편한테 물어보니 자기 취향 아니더라도 꼭 데려가달라 합니다). 지난 편지에서 썼지만 제가 일단 겁 많은 성격이라 모험을 잘 안 하는 타입입니다. 특히나 해외에서는 내가 동양인 여성이라는게 종종 위협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여행자 보험은 챙기시고, 다른 건 다 잃어버려도 여권은 소중히 챙기시고, 다친 곳 없이 안전 귀가하시길 바랍니다.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온다는 건 충분히 그만큼 힘든 일이니까요.
저의 작은 팁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써보자면, 여행에서는 어느 정도 실패할 여유를 가져보세요. 사실 우리가 여행기에 의존하는 건 낯설고 물선 곳에서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죠. 확실히 외국 사람들과 입맛이 다르기에 저도 구글 후기에서는 꼭 한국어 버전부터 체크해 봅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냅다 가봐도 소소한 재미 아닐까 싶습니다. 대만 여행을 갔을 때 딱 한 번,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먹었던 음식이 있어요.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가게에서 먹었던 음식들은 낯설었지만 재밌었습니다. 한국인 블로그 맛집은 이런 선구자들이 우연히 발견한 곳들을 우리가 따라가면서 생긴게 아닌가 하고요. 하지만 한국인 블로그 맛집, 방송 맛집도 좋아해요. 그렇게 검색하다 찾았던 바르셀로나 음식점에서 먹었던 달달한 꿀대구 요리가 생각나거든요. 권혁수 씨 감사합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실망하진 마세요. 특히 낯설고 물선 해외에서는 더더욱 말이죠. 여행 중 크고 작은 일이 종종 일어나고, 이를 해결하다가 시간이 꽤나 많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저도 여행지에서 두꺼비집이 프랑스어로 무엇이었는지, 구내염이 영어로 뭐였는지 알고 싶지 않았는데 이런 일을 처리하다보면 가고 싶은 여행지 몇 군데는 놓칠 수 있습니다.
아니면 피곤하고 기력이 없어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날이 있을 거예요. 그럴 땐, 여행에도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혹시 모르죠, 그렇게 그냥 눌러앉은 동네에서 새로운 맛집을 발견하게 될지도. 아니면 그냥 냅다 숙소에서 라면 끓여먹고 하루 종일 밀린 드라마 보는 순간도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혹시 이 동네에 다시 돌아오고 싶다, 할 만한 순간들은 남기셨을까요? 저는 세비야를 떠나기 직전 조용히 산책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 동네 카페에 가서 아침을 먹고, 예쁜 정원을 구경했어요. 그리고 언젠가 이곳에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소심한 여행자니까 밤 산책은 겁이 나고, 아침 시간이 제일 좋았습니다. 마음속 단골가게를 찜해보세요. 사나흘 내리 들르면 그땐 저를 알아보더라고요. 저는 주로 아침 식사할 빵집이나 카페에 그런 식으로 들르는 편이었습니다.
지난주에 동료와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19년도 여행이 생각났어요. 베트남 달랏이란 곳을 갔어요. 마냥 따뜻할 줄 알았는데 내내 비가 와서, 반팔만 가져온 남편이 추위에 떨었습니다. 결국 근처 마트에 가서 두툼한 트레이닝 바지를 샀어요. 그땐 날씨를 잘못 맞춰서 아쉽고 고생스러웠는데, 몇 년이 지나고 나니 그런 이야기도 추억이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어쩌면 여행 하나에 "인생 여행"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면 너무 실망할지도 모르니까, 그냥 즐겁게 쉬는 것이다, 라고 생각해도 좋겠습니다. 위에 추천한 오지은 작가님의 문장에서 나오는 말인데, 하나하나 다 감동하려고 힘을 주기보다는, 즐겁게 쉬겠다는 마음으로 도착해 우연히 생긴 일들에 감탄하다 와도 좋겠습니다.
독자님, 혹시 다녀오신 여행은 어떠셨을까요? 이 늦은 편지라도 괜찮으시다면, 저한테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실래요? 여행길은 어땠는지, 무엇을 보면서 마음이 바뀌었는지 말이죠. 저는 느리게 여행하는지라
3일짜리 도시도 일주일은 필요하다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독자님도 이번에 나는 어떻게 여행하는 사람일지 느끼셨을 거예요. 지난 호에서 말했듯 요즘 저는 체력이 안 좋아서 여행은 당분간 다닐 생각이 없고, 특히 2년 정도는 해외 여행은 안 갈 생각이에요. 이번 편지를 쓰면서 제가 갔던 여행을 떠올려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막상 훌쩍 가방에 옷가지와 책 몇 벌 넣고 서울이라도 혼자 훌쩍 다녀오고 싶어지네요.
2022년 10월 2일,
안녕한 여행을 기원하며
소얀 드림
PS. 이 편지를 읽은 분들도 처음 갔던 혼자 여행에 대해 말하고 싶으시다면,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혹시나 대리만족해보고싶답니다. 다음 호에 소개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