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토요일은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결혼 5주년이라 이번엔 사치해도 되지 않나 싶어 예산을 높게 잡았습니다. 강원도 여행도 계획하다가, 서울에서 내로라한다는 호텔들을 구경하다, 방값에 흠칫 놀라 호텔 예약 사이트를 종료했습니다.
결국 금요일에 반차 내고 회사 근처에 있는 호텔 뷔페에서 평일 점심을 먹었어요. 작은 뷔페라 생각했는데 하나씩 맛보았더니 배가 무척 불렀어요. 그래도 메뉴를 거의 다 먹어봐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산책을 나섰습니다. 바람이 쌀쌀해 사무실에 들러 급하게 후드 티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소화가 될 때까지 걷다가 네시쯤 집에 돌아와 낮잠을 잤습니다. 근교 카페라도 갈 생각이었는데 점심에 뷔페를 먹고 주변을 크게 산책하니 끝나버렸어요.
다음날엔 느지막이 일어나서 대공원에 갔습니다. 서울대공원 안에는 테마가든이라는 곳이 있어요. 일명 장미원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이들을 위한 작은 동물원과, 작은 정원과 나무그네가 있습니다. 산책로에 놓인 벤치에 누워있으면 저수지가 보여서 좋아합니다.
입장권을 사려는데 직원이 걱정하시며 물어보셨습니다. 볼 게 많이 없는데 괜찮으시겠냐고요. 물론 대공원 본원처럼 사자나 코끼리, 물개를 볼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도 저희에게 충분했는데, 누군가 볼 게 없다고 잔뜩 욕이라도 한 걸까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토요일은 날씨가 무척 좋았잖아요. 늦은 오후 저수지 풍경은 잊지 못할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결혼기념일 주간은 차고 넘칠 정도로 좋았습니다. 남들에게 만사 제쳐놓고 가라고 할 정도로 강력하게 추천할 곳은 아니었지만요.
솔직히 이 정도로 막아서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결혼 5주년이라 낭비할 생각을 했지만 막상 브레이크를 걸고 싶었나 봅니다. 여기서 만약 더 돈을 많이 썼으면 자꾸 본전 생각이 났을 것 같다고요. 금요일에 어마어마하게 좋은 뷔페를 갔다면 정말 속이 쓰렸을 것 같아요. 먹어보지 못하고 나온 음식들이, 그 이후엔 뷔페의 가격이 생각나 괴로웠을 거에요.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의 취향도, 깜냥도, 그릇도 작고 작아서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감탄할 에너지가 없다고. 기력이 딸려서 멀리 나가는 외출이 정말 힘들고, 우리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에서 만족할 만한 요소를 찾고 그것을 되새긴다고. 좋게 말하자면 작은 것에 기뻐하는 걸지도 모르겠고, 아니라면 소심한 사람들이라고.
소심해진 저희의 모습에서 두 가지 문장이 생각났습니다. 첫 문장은 장강명 작가의 5년 만의 신혼여행인데요, 아무리 보라카이에서 멋진 노을을 봤어도, 흔쾌히 행복 리스트에 올라가지 않아서 이상하게 느껴진단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꾸 무의식중에 가성비를 생각해 보게 된다고요. 와인의 세계가 행복해 보여 발을 들여놓으려다, 감당이 안 되어 스스로 선을 긋는 김혼비 작가의 모습에도 공감했습니다.
언젠가 아주아주 부자가 되어 근심 걱정이 덜어지면 그 한계가 조금 넓어질 수 있을까요? 혹시 제가 망설이며 고민만 하는 사이 놓쳐버린 좋은 풍경도, 즐거움도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 취항의 한계를 넓히는 것보단 제게는 지금 일상에서 돋보기를 들이대 행복을 건져올리는 게 더 쉬워 보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요즘 부지런히 향유하고 즐길 기력이 완전 바닥났거든요.
매일 회사와 집만 오가고 늘 가던 곳만 가는 사람이었지만 달리기를 하면서 동네의 보석같은 모습을 발견했다는 김상민 저자의 말처럼, 저 또한 우리 동네에서, 일상에서 행복을 건져올리는 방법을 알면 어떨까 싶네요. 일단은 동네 여행 마스터 최재원 저자의 가르침대로, 우리 동네에서 내가 좋아하는 다섯 가지 순간을 나열할 수 있습니다. 일단은 그걸로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 문장은 코로나 시기를 버틸때 발견했던 문장인데요, 카페도 헬스장도 맘놓고 갈 수 없었던 그때보단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제 세계는 좀처럼 넓어지지 않네요.
만약 여러분들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추억을 쌓는 분들이라면, 혹시 이 가을에 만난 좋은 풍경에 대해, 지난주에 갔던 맛집들에 대해서 자랑해주시겠어요? 기쁜 마음으로 저장해둘게요.
2022년 9월 26일,
오늘도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지쳐버린
소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