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여행이었다면 그걸로 된 거에요 각자의 방식대로 즐거운 여행 지난 호에 여행을 쉬어가는 것에 대한 문장들을 모아보내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저는 여행 에피소드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개성이 묻어날수록 더 좋아해요. 그래서 여행기에서 또다시 각자의 여행에 대한 생각을 담은 문장을 골라 부랴부랴 후속편으로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 문장 김민철 작가님은 카피라이터이자 취향에 관련된 세 권의 에세이를 냈습니다. 이분의 책들을 읽다보면 기록하는 것, 모으는 것, 읽고 쓰는 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여행은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행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안고 옵니다. 한 장소에 대한 나와 당신의 기억이 같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멋진 미술관이 많은 도시라도 그저 공원을 산책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또 어떤 사건을 겪느냐에 따라, 나와 당신이 만난 도시는 사실 다를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만 가지 여행이 있다면, 만 가지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 문장 어딜 가도 나는 얼치기 여행자일 뿐이다. 그리고 여행하는 사람은 그 장소의 진실을 볼 수 없다. 어떤 곳에 가도 나는 그 장소의 진실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그 장소에 대해 쓸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쓴 여행기는 모두 나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왜 여행 에세이를 읽게 되는 것일까요? 여행 정보는 다른 방식으로 찾을 수 있겠지만, 아마 작가가 자신만의 프리즘으로 투과한 공간과 경험을 읽고 싶기 때문일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작가의 가치관을 벗어나 온전히 여행기에서 읽은 공간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편견은 오히려 사랑스럽단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한수희 작가님 책은 지난 호에서도 소개했었죠. 이 책도 여행에서 만났는데요, 연초 제주도로 간 여행에서 들른 책방에서 읽었던 책입니다. 그때 발견한 제 모습은 "여행때 항상 한 번은 아픈 사람, 조용히 책을 읽는 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세 번째 문장 아니, 그러면 좀 안되나요. 어차피 여행지에서 몇 달 살 것도 아니라면 누구도 수박 속까지 다 파먹을 수 없는데, 그냥 수박 겉만 즐겁게 핥다가 오면 안되나. SNS를 잠시 끊고 고즈넉한 여행을 즐기는 즐거움과, 그때그때 SNS 친구들과 여행의 순간을 나누는 건 다른 종류의 즐거움인데. 뭣도 모른 채 그냥 가보고 싶었던 곳에서 먹고 싶은 거 먹고 나오면 안되나.
이번 호의 주제는 사실 김혼비 작가님의 연재 칼럼에서 떠올렸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인데 판에 박힌 여행은 또 어떠냐, 라는 요지를 가진 에세이입니다. 에세이에서 작가님이 맥주를 얻어마신 여행객들 이야기도 마음에 드니, 꼭 한번 읽어보길 바라요.
저는 하루 여행코스도 2박 3일로 다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코스별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마음도 한편으로 이해가 갑니다. 우리의 휴가는 짧은데 가고 싶은 곳은 많으니 어쩔수가 없겠죠. 수박 겉이라도 즐겁게 핥아야죠. 우리의 생활이나 시간에 따라, 패키지 여행도, 안전하게 블로거들의 일정을 착실하게 따라가는 여행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 문장에서 "뭣도 모르는채" 여행을 다녀오면 안 되냐는 반문이 좋았습니다. 네 번째 문장 결국 정답은 집 거실의 파랑새임을 알아도 즐겁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줄 특별한 존재를 만나고 싶었다.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었다. (…) 커다란 산맥을 보는 여행이 있으면 작은 촛대를 보는 여행도 있다. 작은 마음으로 작은 것들을 보았다. 이런 나라도 즐거웠다.
마지막 문장은 뮤지션이자 작가인 오지은 작가의 여행기에서 가져왔습니다. 작가님의 에세이를 좋아합니다. 여행지에서 좋은 순간을 찾으려다가, 실망했다가, 감탄하다가 허둥대기도 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늘어놓습니다. 비슷한 이름의 팟캐스트 "이런 나라도 떠나고 싶다"에는 여행기 낭독과, 그 이후의 여행 에피소드도 연재중이니 한번 들어보세요.
저는 이 에세이에서 엿본 여행의 자세를 좋아합니다. 벅차오르는 감동이나 인생 커피, 인생 풍경이라고 설레지 않아도, 그저 담담하게 "여행은 즐겁게 쉬는 것이다(위 책의 초반에 나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이 좋았습니다. 느낄 수 있는게 작다는 생각이 들어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의 문장을 읽어보면 그래도 충분히 여행을 갈 수 있겠다 안심하게 됩니다.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지막으로 길게 떠난 여행에서 저 스스로가 감탄할 수 있는 깜냥도 체력도 작은 사람임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잘 할 수 있기 전까지 당분간 여행을 가지 않겠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나를 찾거나' 혹은 '이 도시를 속속들이 아는' 여행을 하지 않아도 좋겠다 생각하니 여행에서 그저 색다른 내 모습 하나를 보거나, 즐겁게 쉬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다시 떠날 수 있는 날이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음 여행은 좀 더 힘을 빼고 가려 합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문장이 있으신가요? 오늘의 문장줍기는 어떠셨나요? SENTENCE PICKER |
월요일 아침 출근길을 앞둔 당신에게 드리는 사소한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