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보통 편지를 보내는 시간은 일요일 밤. 자정가까이 갈 때도 있습니다. 내일의 출근을 생각하면 한숨나오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출근할 수 있었기에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한 순간이 있었답니다. 오늘 썼던 글은 그런 순간 떠올렸던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 그래서 차라리 출근해서 일상을 보내다보면 슬픔은 한켠에 미뤄둘 수 있었다. 보통 자아는 수납해두고 출근한다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하곤 하지만, 슬픔을 미뤄야 하는 입장에서는 외려 반가운 일이었다. 출근을 하면 성실한 직장인이란 가면을 쓰고 일에 빠져든다. 구내식당에 뭐가 나왔는지를 비교하고 동료들과 산책하노라면 슬펐던 순간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미뤄둘 수 있었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순간에 슬픔이 불쑥 찾아오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고 바삐 나갈 곳이 있기에 계속 살아갈 수 있겠다 싶었다.
우리는 어른 행세를 하기 위해 내일도 출근을 할 거고, 일상생활을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일상으로 도피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나마 일상이 있어서 그나마 침잠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고. 잇다른 세계 대전으로 자신의 형제 자매가 비극적으로 죽고난 뒤, 그 고통을 잊으려고 정원 일에 몰두했다던 헤센의 빅토리아 공녀의 이야기처럼, 나 또한 일상으로 도피하는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주중이 더욱 더 바빴으면 좋겠다. 그냥 지쳐 쓰러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