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블로그에 짤막히 썼지만, 4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49제가 지났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밝게 지내고 있습니다만, 깊은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삶의 의미보다 그저 즐겁게 지내보려 했던것 같습니다.
다만 편지를 쓰려면 목에 뭔가 걸린 듯 쓰기 어렵더라고요. 평소 가라앉혀둔 어두운 생각이 떠올라서일까요. 아침엔 죽음을 생각하는게 좋다는 책도 있습니다만, 월요일 아침에 읽기엔 조금 어두운 편지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누군가를 애도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함께 이 마음을 나눌 수 있길 바라요.
나는 이 “납골당 꾸미기”라는 키워드가 바이럴 키워드가 된 점이 퍽 싫기도 했지만,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이 모든 게 산 사람들을 위한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각자 자신의 추모 방식이 있는 거고, 업체는 수요가 있으니 노를 젓고 계신 거겠지.
(...)
재는 재로, 흙은 흙으로.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구절과 함께 종종 함께 떠오르는 문장이었다.
재는 재로 돌아간다면, 결국 아빠와의 추억을, 기억을 종종 떠올리면서 살아가겠지.
내가 결정한 기준이 되는 것도 내가 기억하는 모습일테고, 산 사람들이 결국 그 기억을 붙잡고 살아가는 거니까.
이 우주에서 유일한 한 존재잖아요, 우리는 다. 나도, 이름이 똑같고 태어난 날 (그리고) 시가 똑같은 누군가가 있겠지만 우리는 다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긴 하거든요. 우리는 그걸 맨날 잊고 사는거에요. (...) 너무나 유일무이한 존재 하나가 이세상에서 태어나서 가는거잖아요. 그랬을 때 이 사람이 떠날 때 외롭지 않게, 당신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너무 이로운 행동을 많이 했다, 이걸 많이 얘기해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의미가 있는 삶이었다는 걸 주변에서 얘기해주면 더 와 닿을거잖아요.
대상이 이미 물리적으로 나의 곁을 떠났고 그립고 다시 보고싶다는 상황에서 놓아준다는 것은 질문자님이 사랑했던 토끼에 관한 추억, 경험, 감각들을 모두 추상적 바다에 쏟아붓는 겁니다. (...)그러나 그 추억이 사라지진 않죠 오히려 썩지 않고 오래오래 질문자님의 바다를 아름답게 만들어줄겁니다 (...)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소중했던 존재로 충분해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