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를 다시 시작하기 전까지 제가 계속 떨치지 못한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이 뉴스레터는 과연 특별한 존재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못 했거든요. 요즘 에세이 뉴스레터가 많아졌기 때문일까요, 이제 이런 뉴스레터가 식상하지 않을까 불안했습니다.
언젠가 문장줍기를 운영할 때 독자님에게 이런 피드백을 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나도 이런 뉴스레터 생각하고 있었다고. 조금 기쁘면서도 불안했어요. 다들 원했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나는 시작했다는 뿌듯함이 스쳐갔다가, 이윽고 슈퍼스타 작가님이 나타나 문장을 큐레이션하면 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저를 엄습했습니다. 실제로 문장 큐레이션 공유 앱인 텍스쳐도 있지요.
제가 보내는 이 편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곳에 비슷한 뉴스레터가 있더라도, 주중에 출근하고 주말에 글을 쓰는 보통의 직장인이라도. 문장을 고르고 쓰는 "나"는 혼자니까. 그래서 내 글은 독특하길 바란다고요.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지금 쓰는 이 문장은 너무나 뻔하게 느껴지는것 같고, 주제 의식은 구리게 느껴집니다.
이 불안감은 사실 글을 발행하기 직전이 가장 심합니다. 감히 이 글을 세상에 내놓아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이 메일을 저장하겠다고 구동되는 클라우드 서버야 미안하다고. 하지만 독자님이시여 제 메일은 지우지 말아 달라고, 무언의 기도와 자책을 주워삼깁니다.
저는 아마 글을 쓰면서 이런 순간들과 평생 싸울 겁니다. 사실 글이 읽히길 바란다는건 독자들의 공감을 살 만큼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거죠. 그럼에도 이 글이 고유하다는 건 나만의 독특한 킥을 바라는 것이라 아주 큰 욕심이긴 합니다. 여름님의 글에서 언급된 것처럼, 백년을 노력하다보면 될까요?
이런 고민을 하던 지난주 월요일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뉴스레터 시작 공지를 도저히 못 쓰겠다고 고민만 목이 빠져라 하고 있었죠. 그때 무빙워터라는 유튜버의 최근 클립을 보았는데요, '대체될 수 없다는 건 결국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요지였습니다. 직장인으로서도 유튜버로서도 작가로서도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적은 사람이라도 내 이야기를 한다면 충분히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셨다고 해요.
제가 한동안 뉴스레터를 쓰고싶다가 하겠다는 결심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덕에 뉴스레터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나는 내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된 사람이니, 그 이야기를 보내보자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 한 끗은 결국 내가 만들 거라고 말이죠.
저는 각자의 존재가, 그리고 그가 쓰는 에세이는 고유한 개성을 갖고 있다는 걸 믿어요. 비슷해 보이지만 우리는 사실 고유한 이야기를 가진 존재이듯, 글에도 그러한 독특한 지점이 보일거라 믿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하던 에세이 모임이 있는데요, 여기서 읽은 글들 이야기를 해볼까요. 여름의 솜사탕님의 다정한 글을, 조르바님의 차분한 계절감을, 상천님의 촌철살인같은 글을 닮을 수는 없을 겁니다. 이처럼 제 글에도 제가 아직 모르는 저만의 한 끗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대체될 수 없다는 말은, 글 말고 일에 대해서도 생각할 점을 던져주었습니다.
지금 팀이 바뀌면서 잠깐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직장인으로서의 나는 언제든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협업하는 사람이 대체되더라도 명확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평소에 기록을 잘 하고, 인수인계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죠. 그만큼 은연중에 내 것이라 생각했던 일도 너무 쉽게 사라질 수 있더라구요.
문득 작년에 팀장님이 제게 건넨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일은 바뀔 수 있지만, 내가 어떻게 일해왔느냐가 조직 내에서 내 고유한 영역이 될 수 있다고 하셨었거든요. 설령 내일 갑자기 일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쌓은 경험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믿고 싶어집니다.
혹시 독자로서, 동료로서 느끼셨던 저만의 한 끗을 아시는 분은 제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좋은 피드백은 저장해두고 힘들때마다 읽어보거든요.
-9월 4일,
나만의 한 끗이 궁금한
소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