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부터 한 달 정도 몸이 좋지 않습니다. 일단 속앓이를 길게 했었습니다. 먹은 것이 잘 소화가 안 되어서 밥을 먹어도 짜르르, 속이 아팠습니다. 많이 못 먹다 보니 살이 빠졌는데, 허탈하더라고요. 살이 빠지느니 뭘 좀 먹고싶었거든요.
11월 초 걱정되는 마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부위에서 추가 검진 소견이 나왔습니다. 낯선 이름이라 놀랐는데 또 찾아보면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많았고요, 그 때문인지 병원 예약을 잡기 어려웠습니다. 병원 간다고 반차를 쓰고 서울을 오가는 길에는 일부러 맛있는 커피 사 마시는 걸 낙으로 여깁니다. 그 시간마저 없다면 슬퍼서요.
이곳저곳 자주 아픕니다. 머리가 아팠다가, 자주 체하다가, 목과 허리가 좋지 않은 편이고요. 턱이 약한 편이에요. 껌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이제 껌을 끊었습니다.
어디가 아프면 이젠 또 무슨 병원에 가야 하나, 싶습니다. 진찰을 받으면 항상 내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정확히 서술하는 게 어렵습니다. 평소에 기록하지 않으면 이 아픔을 설명하는게 어렵더라고요. 어디가 아픈지에 대해 의사선생님과 내가 길을 더듬어가며 찾는 느낌입니다.
몸이 좋지 않거나, 무기력할 때 바로 나타나는 증상이 있습니다. 기력이 없으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일만 겨우 하고, 씻지 않고 잠들어요. 재택이 가능하니 다행이죠. 분명 따뜻한 물에라도 샤워하는 게 좋다는 거, 머릿속으론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어려운 걸까요. 그래도 목요일엔 잠깐 몸이 좋아졌나 싶었는데, 이 편지를 쓰는 금요일엔 점심 산책을 가지 못했습니다. 먹어서라도 버티자고 생각하다 저녁에 과식했는데요. 30분 정도라도 가볍게 산책 다녀와야겠습니다.
고기랑 밀가루를 멀리하면 오래 살 수 있지만 무슨 재미냐고 누가 그랬던가요. 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이 제 몸을 달래가며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디저트를 좋아합니다. 취향 안 겹치는 남편과 유일한 취미가 동네 카페 다니는 거에요. 가볍게 와인 한 잔 반주도 좋아하고, 수제맥주도 좋아해요. 무알콜 맥주가 있어 다행입니다. 항상 건강하게 지낼 수 없다면 컨디션 안 좋은 오늘은 흐린 날인가보다, 싶은 마음으로 있어야겠어요.
오늘의 편지를 쓰다보니 강이람 작가의 아무튼, 반려병이 떠올랐어요. "오늘은 흐린날"이라는 말은 "장대비가 지나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저자의 문장에서 표현을 바꾸어 써 보았어요. 저는 이 책을 재작년 겨울즈음 읽었습니다. 문장줍기 48호에서도 첫 번째 문장을 소개했었어요. 자주 잔병치레를 겪는 저자는 주변에 자신이 왜 아픈지를 설명하는 것을 버겁게 느끼곤 했습니다. 저는 저자가 붙인 "반려병"이라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중병과 건강 사이 어드메에 있는" 잔병치레 상태는, 사실 어디가 아픈지 설명하는 것조차 지칠 때가 있어요. 돌보고, 함께 가야만 하는 병이라는 저자의 마음이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주 밑줄은 아무튼 반려병에서 문장들을 가져왔습니다. 아픈 몸이 가끔 버겁게 느껴진다면, 자주 아픈 지인이 이해가 안 간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바라요.
올해가 겨우 한달 남짓 남은걸 보면 벌써 12월인데요, 저는 4분기 하던 일 모두 12월 셋째주가 마감입니다. 이 일들을 처음 손에 쥐었을땐 자갈인줄 알았는데요, 알고보니 돌덩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아픈 시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더 무겁게 느껴지나봅니다. 그저 몸도, 일도 무탈히 추스르고 지나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하반기 할 일을 다 했다 생각해야겠습니다.
-11월 25*일,
무사히 마무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얀 드림
*주말엔 좀 쉬려고 해서 미리 편지를 썼어요. 금요일 저녁, 그래도 무사히 일주일을 마무리하고 편지를 쓰고 산책을 다녀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