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일기
-월요일 아침 출근길을 앞둔 당신에게 드리는 사소한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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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편지는 수능을 보고 난 재수생 독자님의 사연을 다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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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 사연]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수능을 본 재수생입니다. 성적이 생각보다, 그리고 평소보다 안 나왔어요. 4과목 정도 채점하다가 멘탈이 나가서 나머지 과목들은 채점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재수까지 망하고 나니까 좌절감 한가득입니다. '난 해도 안 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고등학교 때도, 재수 때도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모든 노력이 보상받지 않는다는 건 잘 알아요. (...) 잠을 자도 대학 떨어지는 꿈을 비롯한 여러 악몽을 꾸다가 3, 4시간에 한 번씩 깹니다. (....) 앞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고 뭘 해도 저는 안 될 것 같아요. 이런 모습을 부모님이 보시면 속상해하실 것 같아서 부모님 앞에서 만이라도 괜찮은 척을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올해는 수능 끝나고 행복하게, 즐겁게 지내고 싶었는데 허황된 꿈이었나 봅니다. 이럴 때 힘이 될 수 있는 조언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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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이 써주신 편지는 수능이 있었던 일요일에 왔었죠. 잠을 설친다는 말이 걸려서 사연을 받은 날 간단히 편지를 써드렸었죠. 일상을 이어나가길 버겁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챙기시길 바란다고, 제 편지는 다음 주에 준비하겠다고 했었죠.
고생 많으셨어요. 참 많이 참으셨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참고, 문제지를 풀어갔던 생활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었잖아요. 애를 쓴 만큼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 거예요.
제가 수능을 보았던 때는 08년도입니다. 시험장에 들어갈 때 눈물이 터져서 언어영역 시작 전까지 눈물을 훔쳤고, 수리영역을 볼 때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고, 외국어영역은 식곤증으로 사투를 벌였고, 사회탐구는 시원하게 말아먹었습니다. 제 2외국어 시간엔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때로부터 15년이 흘렀으니, 참 오랜 시간이 지났어요. 그래도 종종 시험 다시 보는 악몽을 봅니다.
독자님의 편지를 읽으면서, 독자님이 치열하게 보냈던 시간이 느껴졌어요. 살면서 처음으로 가장 간절하게 노력했던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이 시간낭비라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경험과,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시간이 독자님을 강하게 만들어 줄 거에요.
스무살 초입에 1,2년이 늦어지면 뒤쳐진다 느길 수도 있지만, 인생을 길게 보면 잠깐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열아홉에 대학에 들어가 스물 셋에 취업했습니다. 마냥 스트레이트로 살았지만, 그 이후 진로 방황을 4년동안 했거든요. 언제라도 겪을 수 있는 고민 많은 시기를 그저 좀 더 일찍 겪으신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독자님 앞에는 대학 생활, 혹은 직장 생활이라는 또다른 관문이 있을 겁니다. 저는 독자님이 두 번 수능을 치렀던 시간이 독자님을 단단하게 만들었을거라 믿어요. 지금은 힘들지만, 그땐 그랬지. 라고 회상할 날이 올거라 믿어요.
저지금 하고 계신 고민을 그래서 삼수를 해야 하나? 일단은 어디라도 가야 하나? 두 가지 선택지로 납작하게 만들고 싶진 않습니다. 결정을 내리고 행동에 옮기셔야 하겠지만,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더 다양하게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진로를 다시 점검해 볼 수 있고, 잠시 신경을 꺼 두었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볼 수도 있고요.
고민 끝에 어떤 선택을 하시던, 독자님에게 의미있는 선택이길 바라요. 수능을 한 번 더 본다면 무작정 다음 수능으로 도피하는 게 아니라 간절하게 한 번 더 도전하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진학하겠다 결심하신다면, 놓아버리듯 아무 곳이나 체념하듯 진학하는 게 아니라 다음 챕터로 나아가기 위한 여정이길 바랍니다.
이번주 밑줄에 어떤 문장을 소개할까 하다가, 첫번째로는 독자님을 위해서 비슷한 고민을 했던 분들이 나온 유튜브 영상 클립에서 가져왔어요. 인터넷에서 비슷한 고민상담을 검색해 보니, 발견했던 고민상담글 댓글에 나온 말도 비슷했습니다. "그냥 생각보다 나는 잘 살아. 아무튼 괜찮아, 정말로.( 링크)" 두 번째 문장은 정신건강의학신문에 신재현 전문의가 쓴 글에서 가져왔습니다. 사실 저 글은 수능을 마친 자녀가 있는 부모님이 독자이지만, 지금을 보내고 있는 독자님에게도 들려줄 만한 문장이다 싶었어요. 세 번째 문장, 네 번째 문장은 이 경험이 독자님을 단련시켜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골랐습니다. 네 번째 문장은 문장줍기 12호에서 소개하기도 했었습니다.
이 이야기 말고 또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문을 두드려주세요. 밑줄일기 사연편에는 AS가 있답니다. 오늘 날씨가 좋아요. 한 바퀴 산책도 다녀오시고, 맛있는 요리도 드시고, 따뜻한 물에 씻고 푹 주무시길 바라요.
-11월 26*일,
더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은
소얀 드림
*실제 이 편지를 보내는 날짜는 12월 4일이지만, 독자님에게 지난주에 미리 답장을 드렸답니다.
**혹시 독자님에게 격려를 보태주시고 싶은 분들이 있으실까요? 다음 호에 함께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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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문장
"수능 치르고 생각지도 못한 과에 오면서 내가 모르니까 공부를 해야 해. 그러면서 또 찾아가면서 길이 새롭게 열리는 거에요. (그 분야가)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계속 열어가는 것 같아요.(마라톤)
"저는 저희가 남들보다 떨어지는 경험을 좀 일찍 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지금 다들 깨달음이 있으시잖아요. 그래서 더 많이 튀어올랐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저희가 더 성장한 거겠죠.(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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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문장
원 안에서 걸어나온다고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시험, 진학, 진로가 뒤엉킨 영역을 벗어나 시선을 돌린다면 삶에는 엄청난 가능성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인생에 일어나는 일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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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문장
수많은 실패 앞에서도 나는 여전히 ‘가로늦게’를 응원한다. 아직 우리에겐 더 많은 모험이 필요하니까. 우린 더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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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문장
지금의 나를 만든 건 합격의 기쁨보다 16번의 아름다운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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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주제가 잔병치레 이야기였기 때문일까요, 제 안녕을 빌어주는 따뜻한 편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12월엔 저희에게 회복기가 오길 바라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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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일기는 요즘 유일하게 챙겨보는 글인 거 같아요. 매주 선물 같은 글 감사해요. 지금보다 더, 앞으로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저를 돌보다보면 그 시간을 견디다보면 자연스럽게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과가 사과가 되는 과정처럼요. 다가오는 12월에는 소얀님도 저도 건강해진다면 좋겠어요! 무탈한 12월이 되시길! 오늘도 좋은하루 보내세요:)
(...) 남들도 이정도 스트레스를 받을텐데, 제가 스트레스에 약한 것 같아요. 속상할 노릇입니다. 그래도 제 몸이니 짊어지고 살아야겠죠.
(...) 저 또한 가끔 잔병치레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마다 아무것도 못 하고 고통에 신음하는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견뎠기에 사무치게 와닿은 구절입니다. (...) 안 아프고 살 순 없으니 덜 아프며 살길 바라는 수밖에요. 저도, 소얀님도 '반려병'을 잘 길들여가며 행복하게 살아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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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이야기
편지를 쓰다가 두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첫 번째 곡은 Oh wonder-landslide입니다. 링크에는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과 가사 해석을 함께 올린 버전을 소개했어요. 희망마저 버거운 순간이 있을때, 여러분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두 번째 곡은 심규선(Lucia)-Who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서로 다른 빛깔로 물들어 있고,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다는 가사가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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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밑줄일기는 어땠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소감도 좋고, 받고싶은 편지 주제가 있다면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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