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애도일기 밑줄일기
-월요일 아침 출근길을 앞둔 당신에게 드리는 사소한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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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일요일, 그러니까 어제가 발인이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는 고인과 생전 추억이 담긴 사진을 틀어두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젊었을 적 모습과, 어렸던 저희를 안고 있었던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손님을 맞이하다 짬이 날 때마다 남편에게 몇 번 쿡쿡 찌르며 이야기했습니다. 봐봐, 우리 할아버지 참 잘 생기셨었지, 내가 눈썹은 닮았어, 라고요. 그 중 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어요. 작년 어버이날 사진이었습니다. 그 날, 기분이 좋으셨는지 평소와 다르게 할아버지가 많은 말씀을 하셨어요. 그 중 한 마디는 기억합니다. 내가 참 역사가 많은데 그걸 다 기록하지 못했어, 라고. 그나마 일기를 남겨두었는데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잊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사진들을 보면서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얼굴이 닮았다고요. 그리고 가만히 할머니 옆에 앉아있는 이 순간을 내가 그리워하겠구나 싶어졌습니다.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을까요, 장례식장을 지키면서 가족들끼리 중간중간 사진을 참 많이 찍었습니다.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순간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모였음을 실감하면서.
이번 편지는 휴재를 할까 고민하다가, 지금 제 마음을 조금이라도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예전에 썼던 일기들도 가져왔고, 발인을 마치고 돌아와 앉아 뒤적거렸던 문장을 남겨둡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그리워지는 순간을 다룬 문장들입니다. 이번주에 있었던 일을 더 정리하려면 사실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미완의 편지라도 보내봅니다.
-2월 20일,
순간을 많이 기록해야겠다 생각하며
소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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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문장
오랜만에 손자들이 많이 모여서 할아버지가 기분이 많이 좋으신지 젊을 적 자랑도 하셨고, 만난 김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진도 찍었었다.(...)
내가 참 역사가 많은데 그걸 다 기록하지 못했어.
이건 오늘 할아버지가 하신 말이었고,
이 마당에 계절이 어떻게 흐르는지,
나를 키워낸 오랜 집이 어떻게 늙어가는지.
언젠가 울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아주 슬퍼지지는 않도록, 충분히 그리워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추억을 준 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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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문장
우리는 각자 떨어져있지만 우리가 가족이구나 생각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외할머니 생신이었나, 사촌들이 모였는데 나와 사촌오빠의 양말이 전부 똑같았다. 아마 50개들이 양말을 엄마와 이모들이 나눴나보다. 그리고, 얼마전 사촌이 오랜만에 찾은 사진을 보여줬을때, 고만고만한 어린이들 다섯이 옹기종기 모여 찍은 사진이 있었다. 장난감 선글라스를 끼고서. 마지막으로, 사촌언니가 얼마 전 먹고 왔다고 슬쩍 자랑했던 할머니 된장찌개가 부러웠을 때도.
아무리 오래 아무리 멀리 떨어져 산다해도 맛있다는 어떤 맛을 똑같이 알아보는 사람이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고수리,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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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문장
처음에는 바위만큼 무거웠다가 점점 작아져서 돌이 되고 결국은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조약돌처럼 작아지지. 때로는 잊어버리기도 해. 하지만 문득 생각나 손을 넣어보면 만져지는 거야. 그래, 절대 사라지지 않아. - 영화 래빗 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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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문장
우리는 골목길 이쪽 끝에 서서, 골목길 저쪽 끝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 뒷모습은 당신에게 속삭인다. 이제 따라올 필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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