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바쁘게 제가 굴릴 수 있는 주사위를 던졌습니다. 근 두 달 간 뒤숭숭한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잠깐 쉬고 싶더라고요. 월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 안 하던 짓을 했습니다. 바로 호캉스라는 걸 예약했습니다.
사실 집에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휴가를 내더라도 집에 있으면 분명 월요일 내내 컴퓨터랑 폰만 붙잡고 오지않는 메일을 하릴없이 기다릴 것 같더라고요. 원래는 제가 꼭 가보고싶었던 숲 속 숙소로 숨어버릴까 싶었는데 최근 그 지방에 비가 많이 와서 선택지에서 제외했습니다. 내 방이 아닌 곳, 생활감이 없는 곳에 숨어있고 싶었습니다.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즘 들어 소비 고삐를 조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예약할때도 삼천원이라도 아끼고 싶어서 계산기를 두들겼어요. 남편한테 계속 예약 내역을 브리핑하며 잘 예약한건지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호텔을 다녀온 분들 후기를 거의 다 읽어봤습니다. 조금이라도 좋은 가격에, 괜찮은 선택을 했다는 확신이 필요했나봐요.
내가 생각했던 적정 가격선보다 비싼 소비를 결제할 때 은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적당한 가격을 내고도 차고 넘치게 좋을 것 같은' 선택을 하거나, '동네 주변에서도 행복할 것 같은' 선택을 하죠. 작년 결혼기념일 때도 비슷했고요(밑줄일기 4호에 보내드렸죠). 어마어마하게 좋은 곳을 가면 자꾸 본전 생각이 납니다. 그런지라 평소와 달리 호기를 부린 지금 괜히 걱정이 듭니다. 사실 여행 예산을 넘지 않았고요, 할부도 안 했고요, 제일 좋은 호텔은 손떨려서 예약 못했거든요(호텔 티어로 보면 '가성비' 정도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선택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에 대해 자꾸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문장은 거기서 가져왔어요.
자, 그래도 이왕 결제한 거 잘 다녀와보겠습니다. 환불도 안 되거든요. 새로운 경험에는 새롭게 즐거워해볼게요. 이건 영 내 취향이 아니고 돈 아깝다고 속쓰려할 수도 있겠지만요. 대신 한 가지만 실험해보려 합니다. 내 얼굴이 들어간 인증샷을 어디 자랑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좋을지 말이죠. 과연 돈쓰는 재미랑 돈 안쓰는 재미를 함께 아는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봐야겠어요.
-7월 2일,
소얀 드림
이번주 밑줄
첫 번째 문장
(...) 삶 전체 기간의 총량이란 점에서 현명한 선택을 고민하도록 돕는다. 작은 행복을 위해 큰 행복을 놓치는 일은 하지 않게 된다. 당장의 작은 행복을 위해 전체 행복을 깎아내릴 위험을 만드는 일도 피하게 된다. 그건 손해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삶의 행복 총량 극대화니까.
행복이 커졌다는 게 아니라, 더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집 앞 술집에서 하이볼 한 잔을 하는 것과 어딘가 멋진 라운지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것의 행복이 별반 다르지 않다. 방구석에 있어도 집앞 공원에 있어도 어렵게 찾아간 핫플에 있거나 먼 여행을 떠나서도 행복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소얀님에게는 제대로 된 휴식이란 어떤 것인가요? 저는 집순이라 에어컨 틀고 침대나 소파에 누워서 담요 하나 배에 조금 덮고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휴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들으니 휴식은 일상적인 공간이 아닌 일상의 생각을 버릴 수 있는 일상에서 벗어난 공간에서 취하는게 진정한 휴식이라고 하더라구요. 일상적인 공간은 일상의 고민이 뭉게뭉게 피어올라서 쉬기가 힘들다고..!! 소얀님이 생각하시는 제대로 된 휴식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요!
->예전에 휴식에 대한 편지(문장줍기 69호)로도 쓰고, 아예 글을 따로 썼던 적이 있는데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편한 마음으로 하면서 잠깐의 고민을 털어버리고 내일도 잘 달리도록 노력한다면 어떤 일이든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결국 이번주엔 일상의 고민을 이기지 못해 집 밖으로 도망가긴 하지만요.
요즘 밑줄일기를 챙겨보지 못할만큼 바쁘고 정신없는 회사생활 중입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있는데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건강하게 풀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커졌습니다. 이 고민이 스트레스를 더 받게 만들정도로요. 그러다 그낭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순간에 집중하기로요. 내일이 걱정되고 불안하지만 지금 당장 알수도, 해결할수도 없는데 걱정해서 뭐하나 이렇게 넘기면서 걱정을 덜어내며 스트레스를 줄이는 연습중입니다. 다들 무탈한 하루하루를 보내길 바랍니다.
->저도 걱정을 사서 하는 편이고 노트북 끄고 돌아서면 성격이라 남일같지 않은데요, 오늘은 오늘 일로 내버려 두고 스위치를 끄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힘들었던 주간 산책을 그렇게 많이 다녔어요. 저도 독자님의 무탈한 하루를 기원할게요.
못 다한 이야기
-밑줄일기 피드백 중 일 고민에 대해 보내주신 분이 계십니다. 이건 제가 사연특집으로 다시 다뤄보려 하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