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술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싶어져서 밑줄일기
-월요일 아침 출근길을 앞둔 당신에게 드리는 사소한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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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부터 돌아가면서 아픕니다. 역류성 후두염에 이어 이번엔 대상포진이 왔다 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젠 진짜 술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싶어집니다. 약을 먹을 땐 당연히 못먹고, 약을 먹지 않을때도 맥주 반 캔만 먹어도 몸에서 뱉어냅니다. 주량이 세진 않아도 술자리와 향긋한 술을 좋아하는 저였지만, 이젠 "그만 마신 사람 된게 맞구나" 싶어졌어요. 그런 마음으로 주말에 써둔 글을 옮겨둡니다. 사진을 첨부한 전문은 제 블로그 포스팅에서 볼 수 있어요. 이번주 밑줄로는 과거 한 차례 금주했던 시기에 썼던 글, 술맛을 섬세하게 다룬 문장, 금주할 결심을 다룬 문장 모두 골고루 가져왔습니다. 술을 정말 좋아하지만 이제 이별해야겠구나 싶은 마음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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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술과 이별할 결심을 하게 되니 유달리 맛있었던 그 때의 술들이 기억난다. 나는 독주를 마시기 보다는 향긋한 술을 좋아하는 편이다. 카페에서 책 읽으며 홀짝였던 화이트와인의 향긋함, 수제 맥주 IPA의 섬세한 쓴 맛, 향 좋은 위스키와 곁들여 먹는 카라멜 초콜릿, 기획팀 팀원들과 사무실 1층 건물 노상에 앉아 함께 마셨던 포트와인, 아버님과 막걸리 한 잔했을때 며느리와 함께 마시니 뿌듯해하시던 기억, 스페인에서 음식마다 곁들여 마셨던 식전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 시절 그렇게 자주 들락거렸던 신촌 서른즈음에의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마셨던 김빠진 맥주까지. 물론 절제 없이 무턱대고 마시다 만든 흑역사들도 많지만, 이별할 결심을 하니 좋은 일들만 기억난다.(....)
고기와 밀가루를 멀리하면 오래 살 수 있지만 그럴 거면 오래 사는 의미가 없다, 어떤 연예인이 그랬던가. 하지만 아팠다 겨우 살아났다면 이제 그런 이야기는 하지 못할 게다. 앞으로도 많은 술자리에서 그 술을 그리워하면서 제로 콜라나 사이다를 시키겠지. 아니면 소주나 맥주 한 잔 붙잡고 깨작거리듯 홀짝이거나. 다채로운 술이 점점 많아지는 요즘, 영영 술과 이별해야겠다 결심하는 나는 이기기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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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문장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인 미소가 사는 집 대신 위스키와 담배를 택했다면, 나는 내일 산뜻하게 일어나기 위해 맥주와 커피를 포기할 수 있다. 취향이 날카로운 사람에겐 이게 굉장히 힘든 일, 자아를 자르는 고통일 수 있겠지만, 나는 적어도 좁아진 활동 반경의 폭이 아직까진 그렇게 괴롭지 않다. 물론 연말에 맥주 한 캔 못사온 건 아쉬웠다. 솔직히 이게 사는거냐고 한 세번 생각했지만.. 사실 그래도 좋은 취향을 가꾸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건 여전히 좋아한다. 앞서 말한데로 "좋은 것들"을 고르기 위해 그분들의 리뷰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니까. 그렇지만 난 이제 건강을 위해 취향에 조금 무던해진 사람이 되었다.
-출처: 심심한 어른이 되어야겠어(발행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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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문장
술은 나를 좀 더 단순하고 정직하게 만든다. 딴청 피우지 않게, 별것 아닌 척하지 않게, 말이 안 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채로 받아들이고 들이밀 수 있게.
이 취향의 세계에서 지속적 만족을 얻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지속적 만족이 불가능하다면 그 반작용으로 생길 지속적 결핍감에 대처할 수 있는가. 쉽게 말하자면, 너는 취향의 확장을 감당한 깜냥이 되는가!(...) 그러니 작은 통 속에 살아가는 동료들이여, 지금 당장 감당할 수 없다면 때로는 나의 세계를 좀 줄이는 것도 괜찮다. 축소해도 괜찮다. 세상은 우리에게 세계를 확장하라고 기꺼이 모험에 몸을 던지라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지만 감당의 몫을 책임져주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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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문장
일단 한 달 끊어보니 그 이후에 음주 습관이 훨씬 좋아진다. 중독적이라 가까이할수록 멀어지기 힘든 것처럼 느껴지지만 억지로 거리를 둬 보면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술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 달간의 금주는 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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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이 보내준 답장
2024년 1월을 맞이하면서 하루의 시작을 아침 챙겨 먹기로 계획하고 있어요. 하나 둘 핸드폰 사진첩에 아침 기록이 쌓이는 걸 보면서 나를 잘 다독이면서 챙겨가고 있구나 그런 마음이 들어 스스로 좀 뿌듯하기도 하고 그 사진들이 엄청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덕분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아침식사도 준비하고 책도 좀 읽어보기도 하면서 하루를 살피게 되었어요. 오늘 레터를 보면서 나를 위한 소중한 끼니를 챙기고, 마음에 좋은 한 줄의 글을 읽는 게 역시나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습관을 정착시키는 게 참 쉽지 않은데, 나를 채우는 방식으로 시작하는 아침을 보내신다니 부럽네요. 아침 식사와 책이라니 생각만 해도 충만한 시간일듯 싶습니다. 요즘 저는 부리나케 일어나 아침을 대충 쑤셔넣고 나가는 일이 많은데-마음이 왜이리 급한걸까요-, 저도 기회가 되면 그렇게 시작하는 아침을 보내는 시간을 늘려야겠어요. 안 되면 주말에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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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밑줄일기는 어땠나요?
-사연 문장이 한 개 더 있는데, 편지가 길어져 분리했습니다. 취준생 님의 사연을 다룬 글은 수요일에 발송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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