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좋아하지만 시드는게 아쉬워 꽃을 받으면 부담스러워하는 편이었는데, 문득 저도 꽃 선물을 받고싶어지더군요. 남편에게 GPT 프롬프트 입력하듯 받고싶은 꽃다발의 조건에 대해 나열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화를 다룬 에세이를 쓰다가 이번 주에는 소확행과 욜로에 대한 생각도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글 중간에 나오는 '아메리카노' 얘기는 요조 님의 강연에서 나오는 이야기에요. 우리가 종종 오해하는 '욜로'의 의미를 좀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글이라 함께 동봉해봅니다.
(...) 작년즈음부터인가,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말이 싫어졌다. 나를 위한 선물, 소확행이라는 말은 인기 좋은 마케팅 용어가 되었다. 분명 본래 의미는 구운 빵이라던가 셔츠 등 일상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감각들을 다루던 말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끼워 파시는 선물은 소소한 금액이 아니었다. 예전엔 욜로의 비용도 아메리카노 한 잔 정도였던 것 같은데 요즘은 호캉스 정도는 되줘야 한다니. 참 가성비 안 나온다 싶네.
그런 마케팅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 안간힘을 쓰다보면, 종종 이정도면 잘 막았다, 라는 생각을 한다. 그게 결혼 6주년 기념일 이야기건, 내 생일 선물이던 말이다. 가계부를 쓰다보면 감성 소비는 한순간이지만 그걸 메꾸느라 마음 고생하는 건 오래 가니까. 정신차려야지, 대출금 갚아야 하잖아. 몇 년 뒤면 이사갈 준비도 해야하잖아. 계산기 두들겨보면 진짜 억 소리 나던데? 말마따나 우린 언젠가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모두들 죽잖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무 쉽게 아프잖아. 사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우린 스스로를 위한 안전망을 준비해야 하니까.
그렇게 투덜거릴 때가 대부분이건만, 일주일 동안 꽃집 주인분이 건넨 말이, 그리고 그 오렌지색 꽃다발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사진도 제대로 못 찍고 그냥 지인들한테 주었는데, 나도 다음엔 꽃 받을 일 있으면 망설이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었다.
(...) 이번에 받는 꽃다발은, 시들기 전까진 매일매일 정성껏 가꿔줄 거야. 짧아서 아쉽지만, 그래서 좋은 부분도 있을 테니까.
“오늘이 마지막 남은 하루라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하루 종일 맛있는 것 다 먹을 것’이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내일 죽을 것 처럼 사는 건 힘든 일이에요. 하지만 늘 그걸 생각하고 있는 것과 생각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동생의) 사고를 겪은 이후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살자’고 다짐한 게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늙어서 잘 살려고 오늘 먹고 싶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참지 말자...”
소심해진 저희의 모습에서 두 가지 문장이 생각났습니다. 첫 문장은 장강명 작가의 5년 만의 신혼여행인데요, 아무리 보라카이에서 멋진 노을을 봤어도, 흔쾌히 행복 리스트에 올라가지 않아서 이상하게 느껴진단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꾸 무의식중에 가성비를 생각해 보게 된다고요. 와인의 세계가 행복해 보여 발을 들여놓으려다, 감당이 안 되어 스스로 선을 긋는 김혼비 작가의 모습에도 공감했습니다.
언젠가 아주아주 부자가 되어 근심 걱정이 덜어지면 그 한계가 조금 넓어질 수 있을까요? 혹시 제가 망설이며 고민만 하는 사이 놓쳐버린 좋은 풍경도, 즐거움도 있었던 게 아닐까요?
차라리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면 어떨까.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일탈을 포장하며 합리화하기보다는,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라고 인정하는 것 말이다.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잘하기 위해 잠시 한 템포 쉬어가는 재충전의 시간으로 말이다.(...) 내 삶에 있어 오늘만 특별한 날이 아니라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내 일상이 나에겐 모두 선물 같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