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피곤해서 꼼짝도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산책 총량이 부족했나봅니다. 원래는 월요일저녁에라도 써서 보냈는데, 밀린 일을 쳐내고 조금 한숨을 돌렸어요. 뒤늦게 이번주 편지를 보냅니다. 휴재보단 지각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주 문장 상당 부분은 문장줍기 과월호 "산책하고 싶어서" 편에서 가져왔습니다. 앵콜 편이라 생각해 주세요.
몇 주 전 보낸 뉴스레터에서 인용한 최다혜 작가의 책에선, 하루를 집밥을 리트머스지로 쓴다고 했다. 물론 몇 가지 더 생각나지만, 가장 또렷한 리트머스지는 산책이다. 그 날 산책이나, 운동량이 보장되지 않으면 내 기분은 그대로 침울해진다.
남편이 언젠가 말한 적 있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나는 생각이 많아서, 그때 내뱉는 말들은 응어리진 감정이 그대로 나와 이해할 수 없는 날것의 언어라고. 30분 정도 걷고 나면 그제서야 인간의 말이 나온다나. 지친 강아지처럼 뇌도 지쳐야 생각도 가라앉나 보다.
혼자 걷는 시간도 좋지만 함께 걷는 시간도 좋다. 걸음을 틈틈히 채우려 가끔 산책을 하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그래서 요즘 일부러 퇴근하면서 남편을 불러내서 걷는 일도 많다. 걸으면서 하는 대화는 조금 나긋해진다. (....)
그렇게 산책하는 시간이 참 소중했다. 걷기 참 좋은 계절이다. 겨울엔 궂은 날을 피해서 일부러 헬스장에 가서 걸었는데, 밤 공기 마시며 호흡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미세먼지가 없는 날, 비가 안 오는 날이면 가방은 내팽개치고 일부러 없던 길도 만들어내어 걸어야겠다.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일상사 가운데 어떤 빈틈을, 나로선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순수한 사랑 같은 것에 도 달할 수 있게 해줄 그 빈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 을 말한다. 결국 산책이란 우리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게 해주는 수단이 아닐까?
하지만 사람도 생명체인지라 날씨의 변화, 온도와 습도, 햇빛과 바람을 몸으로 맞는 일은 중요하다. 이를 통해 살아있따는 실감을 얻고, 내 몸을 더 아끼게 된다. 봄과 가을의 햇빛이 다르고 여름과 가을의 나무에서 각기 다른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이 지구에 발딛고 사는 즐거움이다.
매번 읽고만 말았는데 이번 밑줄긋기는 공감이 가네요. 얼마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심근경색 수술을 받고 섬망 증상으로 고통스러운 밤을 곁에서 지킨 터라 일상의 소중함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몰라요. 웅크리고 기다린다는 말, 정말 공감이 가네요. 우리 모두 조금 더 건강해지길!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문장으로 줄여 쓰셨지만 그 밤이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부글거리는 마음을 털어놓으면 울어버릴까봐 그저 아프시다, 라고 말하게 되더라고요. 여기서라도 조금 털어놓으셔서 괜찮아지셨을까요? 아버님의 쾌유를, 독자님의 안녕을 빕니다.
늘 잘 읽고 있습니다. 행복은 햇볕처럼 스며들듯 찾아오고, 상실을 겪은 뒤에야 무엇을 잃었는지 알게 된다는 문장이 마음에 남습니다. 사실 저는 요즘 정말 행복한데요, 한편으론 그 행복이 곧 사라질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에 혼자 떨곤 합니다. 이 순간을 즐기기만 해도 모자란데 말이죠. 머리론 이 사실을 알지만 가슴으론 자꾸 불안한 게, 본능인 것 같기도 하고 병적인 것 같기도 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바보같은 고민이지만 혹시 저같은 분이 계실까 싶어 고백해 봅니다.
-> 너무 행복하다보면 누군가 시샘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던가요. 저는 행복하지 않지만 요즘 내가 갖고있는 것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질까 두렵곤 합니다. 행복과는 다르지만요. 사실 이번 편지는 독자님이 말씀해주신 이 내용을고 글을 쓰고 싶었고, 몇 문단정도 머릿속에 구상해두고 있었는데 끝맺지 못했어요. 대략 언제 다시 고통이 올지 모르니 머릿속에 행복을 저장해두고 힘든 구간을 버틸 때 접속해야 하지 않을까, 란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꼬옥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