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시간을 쪼개 면허 도전과 PT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살면서 몸으로 쓰는 일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핑계처럼 느껴졌거든요. 기왕이면 면허 따고 득근한 뒤 도전 성공담을 엮어내고 싶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못해서 진도가 참 느립니다. 일단은 못하는 걸 넘어서 개못하는 지금 마음을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이제껏 몸으로 하는 건 항상 자신이 없었다. 늘 체육 내신은 꼴등이었다. 겁이 많은 성정 탓에 롤러 스케이트도, 스키도, 스노보드도, 자전거도 타지 못했다. 면허도 없었다. 이 운동 저 운동 도전하다가 걷기 운동만 하곤 했었다.
그런데 작년 즈음부터인가, 남들 다 하는 일에 나는 못해요, 라는 말을 하는게 참 싫었다. 어디선가 보았는데, 운전과 자전거와 수영은 살면서 꼭 필요한 스킬이라고. 수영 안 좋아해도 물에 들어가면 대충 헤엄은 칠 수 있으니, 자동차랑 자전거하고는 친해져야겠다. 운동 싫어한다고 피하지 않고 헬스장 가서 이제 기구 운동도 해봐야하지.
(...)
요즘 아득바득, 꾸역꾸역 면허학원과 헬스장을 들락거리다보면 중학교 뜀틀 수업이 생각난다. 체육 꼴등이었던 나는 결국 실기 시간에 뜀틀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는 방과후에도 남아 연습하더니 어떻게든 뜀틀을 넘었다. 그땐 별 비중도 높지 않은 체육 내신까지 신경쓰는 독종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에서야 그 맘을 알 것도 같다. 못하는 걸 못한다고 포기하기보단, 못하는 걸 계속 못하는 순간을 견디며 연습하다가 마침내 뜀틀을 뛰어넘는 그 기분 자체가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고. 그 아이가 진작 깨달은 걸 나는 이십 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나보다.
오늘도 못하겠지.
언제쯤 잘하게 될까.
진작 피하지 않았더라면 좋을텐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 다행인걸까.
이 시간이 지나 마침내 운전을 하고 헬스장에서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이 된다면, 앞으로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피하지 않을 수 있겠지. 못하는 일을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에 좋든싫든 적응해야 할 때 내 맷집이 되어주겠지. 마침내 해냈다 말할 수 있을 그날을 고대하며 이제 헬스장으로 가 봐야겠다.
오늘 편지 원고는 일요일에 써놨는데, 편지를 마무리하는 화요일 새벽은 세월호 참사 10주년입니다. 이번 호에 이 말을 언급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겠다 싶었어요. 저도 그 날 기억이 생생합니다. 회사 점심시간에 전원 구조되었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었는데, 퇴근길 버스에선 이대로 나도 죽을 수 있겠다는 불안감과 슬픔이 맴돌았던 기억이요. 씨리얼 채널의 영상("팽목이라는 데가 너무 이상한 곳이었어요")과, 작은 문장들을 공유드립니다. 흐릿해졌지만, 잊지 않겠다고요.
첫 번째 문장
이웃의 모든 일은 빵점이다. 아무리 잘한들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해도 빵점이 최고점수일 수 밖에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건 쉽지 않다. (...) 천천히 오래 계속하다보면 빵점까지 도달할 지도 모른다는 간절함때문이다.
어떤 분은 그 날의 날씨까지 기억했었어요. 그날 유난히 쌀쌀했었는데, 자기는 되게 따뜻한 방 안에서 이불덮고 그걸 보고 있더래요. 그 순간 그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더래요. 지난주에 뭘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났는데 이렇게까지 기억하는 건 트라우마의 어떤 증거였구나, 생각이 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