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하게, 애정을 담아서 이름 부르는것, 좋아하세요? 무언가를 어떤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다정한 느낌을 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물, 나 자신을 부를 수 있는 어떤 단어. 오늘은 이름에 대한 문장을 모아봤습니다. 첫 번째, 둘만 아는 세상 속으로 그를 내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나는 그 전에, 어쩌면 그 후에도 타인과 공유한 적 없는 영역으로 들어갔다. 연말 여행때 카페에서 집어든 소설책에서 나온 문장입니다. 퀴어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이기도 합니다. "첫사랑의 열병같다"는 평이 지배적인데, 저는 아직 볼 엄두가 안나서 아껴둔(?) 영화입니다. 보고 나면 며칠 후유증이 생길 것 같아요. 연인간에 애칭을 부르는 것은 배타적인 행위입니다. 나만 아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니까요. 더군다나, 그 이름이 나의 이름이라면 어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두 번째, 내 이름에 대한 책임감 자신의 이름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 나의 이름. 여러분들은, 지금 불리는 이름이 마음에 드시나요? 이소라의 노래(Track 9)가 말하듯, 우리는 "내가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개명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으니 싫으니 해도 다른 이들이 애정을 담아 불러주는 이 글자에 정이 가기도 합니다. 제 본명은 좀 흔한 이름입니다. 하지만 이름 뜻 덕에 좋아합니다. 밝을 소에 뻗을 연. 저 한자들이 근성과 긍정, 을 뜻한다고 멋대로 해석해보기도 합니다. 아래 글을 작성한 한감독 님은 "이름의 뜻은 내가 세워나갈 수 있는것"이라는 문장도 작성해주었습니다. 내 이름을 불릴때 그저 좋고, 때로는 내 이름을 통해 스스로를 다잡기도 한다고요. 세 번째, 정을 주는게 무섭죠 내 다리를 양쪽으로 오가며 길을 막던 고양이에게 길막이란 이름을 붙여준 날,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함부로 물건에 이름을 주면 안 돼, 이상한 것이 깃드니까. 함부로 물건에 애정을 주면 안 돼,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을 품을 테니까. 위 문장은 제가 좋아하는 고양이 유튜버가 쓴 책 소개글에 나온 문장입니다. 양어장에 오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챙겨주면서도 정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가, 어느덧 구독자들한테 정만 빼고 다 해준다고 평생 놀림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정을 주는 건 무서운 일이에요. 아래 문장은 신의 태궁이라는 웹툰에서 가져왔습니다. 편지를 쓰면서 "의인화"에 대한 글을 보다보니 생각나더라구요. 그 글에 따르면 어떤 사물에 의인화를 하는 사람들은 사실 외로움을 타는건지도 모른단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저 웹툰에 나오는 주인공 '태궁'은 외로움을 느끼기에 밥그릇 도깨비를 아끼거든요. 네 번째, 사물을 명명하기 이름을 포함하는 문장은 보통 그 이름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실, 진술은 이름과 완전히 무관할 때도 있다. 작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다. 몇 달 전부터 온라인 독서모임에 참가해 매일 서로가 읽은 인상깊은 구절을 인증하고 있습니다. 위의 문장도 거기서 마주친 글입니다. (제가 이해한 바를 정리하자면) 우리가 이름과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대상을 묘사하기 위해서이고, 이름 그 자체보다 서술하고 싶은 바를 위해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래 문장은 두 번째 문장의 "한감독"님의 글에도 인용된 말입니다. 알쓸신잡에서 나눈 대화 클립을 보시면, 박완서 작가가 "사물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다"는 측면에서 김영하 작가에게 전한 말이랍니다. 위의 문장과 비교해 생각해보면, 작가가 사물의 이름을 파악하고 이를 서술하려는 건, 사실에 가까운 문장을 작성하려는 노력이지 않을까 합니다. 발행인의 문장 다른 이름으로 사는 것은 꽤 근사하다.(....) 일 할 수 있는 하나의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이라 마음에 든다, 고 했다. 어느 정도 본래의 나와 일하는 나를 분리할 수 있다나. -발행인의 브런치, "제 이름은 제가 정할게요" 중.직장에서 닉네임 문화를 사용하므로, 회사에서 저는 본명이 아닌 '얀'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합니다. 닉네임 문화가 과연 수평적이긴 한지 많은 토론이 있지만, 저는 직장에서 다른 이름으로 사는 것을 꽤 좋아합니다. 출근과 동시에 다른 자아로 로그인하는 느낌이지요. 사실, 저 이름은 제 오랜 별명입니다(소연>소얀>얀으로 진화했지요.). 그리고 6번째 편지에도 소개한 '김얀' 작가님의 필명이기도 하니 더 반가웠습니다(김얀 작가님 브런치 가보기). 주어진 이름에 정을 붙이는 것처럼, 새로운 이름을 찾고 이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즐겁습니다. 휴가를 다녀올게요 3월 1일 첫 번째 편지를 보낸 이후, 꼬박 서른 번의 편지를 썼습니다. 792명이라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제 편지를 구독해주셨습니다. 때로 망망대해에 유리병 편지를 던진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가끔 인터넷에 뉴스레터를 검색해보고 반응이 반가워 댓글을 달기도 했죠. 그 반응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뉴스레터 마감때마다 꺼내보고 있습니다. 저는 반응이 고픈 관종이니까요. 매주 마감을 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파서 머리를 부여잡고 쓴 편지도, 풀리지 않는 문장에 도망치듯 보낸 편지도 있습니다. 그래서 쉬어가려 합니다. 그 동안 미뤄뒀던 뉴스레터 정리를 해볼까 해요. 편지 레이아웃도 다듬고, 백업 페이지도 꾸려보려 합니다. 그럼 저는 두 개의 편지를 쉬어가고, 10월 11일 밤에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문장줍기는 어떠셨나요? 함께 나누고 싶은 문장이 있으신가요? SENTENCE PICKER |
월요일 아침 출근길을 앞둔 당신에게 드리는 사소한 편지